오늘 나는 울고 싶다.
날씨는 원망스럽도록 찬란하게 맑고 아름다우며 나는 오
늘 누구와의 약속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.
가야 할 곳도 만나야 할 사람도 집으로 오게 되어 있는
사람 하나도 기록된 것이 없다.
오늘 날짜는 그대로 하얗게 공백으로 눈부시다. 나는 오
랜 시간을 비어 있는 날짜를 바라보며, 거기 무엇이 적혀
야 가장 내가 행복한가 생각해 보았다.
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지만 결국 고개를 흔들고 행복
하고는 거리가 먼 이름들만을 썼다가 지워 버린다.
몇번째 방을 돌았다. 커피잔을 비운 것도 세번째이다.
마치 진정제나 마취제를 마시듯 나는 커피를 마신다.
화려한 비애가 몸 전체로 퍼져 온다. 그러나 가슴 안에
선 울컥울컥 어떤 덩어리가 움직이며 치솟아 오를 것만 같
다.
그 덩어리는 나의 정열이다. 어디에다 쏟고 싶은데 쏟을
곳이 없어 안절부절하는 나의 외로운 정열이다.
오늘같이 하루가 텅 비어 있는 날, 나의 정열은 고독한
짐승의 울음 소리를 내며 운다.
그대는 알고 있는가.
바쁘게 돌아가는 나의 생활이 언제나 텅 비어 있다고 생
각하는 나의 목마름을 그대는 알고 있는지 몰라.
그대여, 아무리 나의 하루가 황홀한 일들로 가득하여 편
히 앉을 시간이 없다 하여도, 언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
않고 있다고 느끼는 이 마음의 가난을 그대는 알고 있는지
몰라.
그대여, 나는 오늘 울고 싶다.
전화기는 죽은 듯이 고요하여 참으로 바보스럽게 앉아
있고, 나는 손바닥이 붉어 올 정도로 끓는 정열에 시달린
다.
달려가고 싶다. 그대가 있는 그 어디에라도.
폭풍, 장마, 천둥, 그 어떤 악조건의 기후라도 나는 상
관없어.
비행기, 열차, 버스, 그 어떤 교통편도 가릴 것이 없지.
나는 그대에게로 가는 교통비라면 전재산을 털 수도 있다.
나는 참으로 큰일날 여자다. 그러나 그 어떤 큰일도 두
려워하지는 않는다.
그렇다. 나는 그대를 만나는 데 따르는 그 어떤 위험도
다 받아들일 수 있다.
폭풍 속에 배를 탈 수도 있고 악천후의 비행기도 탈 수
있다.
가능하다면 맨발로 고속도로를 달려갈 수도 있다.
나의 정열은 아직도 너무나 건강하고 젊어서 숨이 차도
록 뜨겁고 그만큼 슬프다.
오늘 나는 울고 싶다.
마음대로 못 해서 밉고 미운 사람아, 나의 슬프고 고독
한 정열을 홀로 쓰다듬으며 그대를 부른다.
울면서 그대를 부른다.
나는 하루 종일 그대를 기다리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.
그대를 기다린 나의 하루는 그 어떤 노동보다 고단하고
지치는 작업이었다. 아니 형벌, 아니 죽음이었다.
하늘 한쪽에 오렌지빛 노을이 물들어 오고 그 너머 어둠
이 밀려오고 있다.
아 이대로 하루가 가고 마는가, 나의 절망은 거센 폭풍
으로 온몸이 부서져 쓰러지고 사정없이 낭떠러지로 추락하
고만 있다.
그러나 그대여, 밤은 아직도 긴 시간이다. 그대를 부르
고 기다리는 시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, 하늘 가득 총총
별이 빛나는 시간까지, 여명의 새벽빛이 밝아 올 때까지
그것도 나의 시간이다.
그대여, 나의 시간은 아직도 무한이다.
그러나 무한한 시간 앞에 나는 초라하게 병든 짐승처럼
엎드려 하루 종일 그대를 기다렸구나, 그러나 그대여, 시
간은 무한이 아니라 유한한 것이 아니던가, 어디까지 가면
끝이 나는 시한부적 한계를 지금 내가 느끼노니, 어디에
있는가 그대여 이 밤이 다 가려 한다.
어느 쪽으로 달려가서 그대를 마중할 수 있느냐. 바람에
실려 가도 그대를 마중할 수 있으니 들려다오, 그대의 인
기척을. 나는 이밤이 새도록 더듬어 갈 수 있을 것이다.
지금 내 몸은 어떤 기적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.
한 마리 새도 될 수 있고 바람도 될 수 있고 한 줄기 비
가 되어 그대 앞에 내릴 수 있을 것도 같다.
이상화의 시구처럼 아 나는 정말 미치고 말았는가.
오늘 나는 울고 싶다.
아니 나는 지금 울고 있다. 그대여 나는 지금 울면서 국
수를 먹고 있다.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걸 지금에
야 깨달았다. 그것을 깨달으며 떨어지는 눈물을 본다. 그
리고 내 눈물을 내가 먹고 있다.
내가 나를 미워하며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자신을 지겨워
하며, 가능하다면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리게 기도하고 싶
은 이 벅찬 고통을 씹으며 울며 국수를 먹고 있다.
이 광경은 참으로 싸구려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삼류
희극일 수도 있다.
그런데도 그러한 저열한 분배도 달게 받고 있는 나 자신
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.
오히려 그것은 압도적인 성스러움까지 느껴질 정도다.
그대여, 이젠 자정이 넘었다. 차소리도 멀어지고 행인의
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있다.
창밖에는 바람이 부는지 가끔 나뭇잎 그림자가 창에 흔
들거리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.
적요한 밤이다.
나는 눈을 감고 싶다. 나에게 언제 휴식이 오려는가, 종
일 삽질을 한 농부보다 더 피곤하고 피곤하구나. 나에게
언제 안정이 오려는가.
그러나 나는 안다. 그대를 만나기 전 나의 휴식은 결코
오지 않을 것을.
사랑할 때는 마음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. 왜냐하면 완
전히 소유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 단 1초도 있을 수 없
으므로.
자기가 확보한 이점도 장점도 더한 욕망의 새로운 출발
보다 더 중요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.
그렇다. 나는 그대로부터 오는 모든 상실과 아픔을 받아
들인다.
그대로부터 오는 모든 고통의 병을 신음 소리 없이 당당
히 앓아 주리라.
나는 애당초 너무도 쉽게 그대가 내게 올 수 있다고 생
각한 일은 없다.
시련의 강을 건너고 고 통의 산을 넘으며 고문의 절벽에
떨어질 반죽음을 나는 쾌히 승낙한 사람이다.
그대여.
세상의 부질없는 허욕과 속된 짐을 벗고 오너라.
오늘 같은 세상에도 아기 예수님이 선물받은 몰약과 같
은, 향수와 같은 사랑을 우리가 보여 주어 참사랑의 본보
기를 보여 주고 싶구나.
그대여.
영원한 안식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손잡지 않
으면 안 된다.
지금도 나는 그대를 기다린다. 나는 이 밤도 결코 잠들
수 없다. 나의 그대여. ..
– 신달자, [오늘나는울고싶다.]
